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탁통치 오보사건 (문단 편집) === 북한의 경우 === 북한 시민들도 해방에 의해 희망에 부풀었던 건 마찬가지였던지라 북한의 분위기도 초기에는 [[김일성]] 등을 포함한 북조선로동당도 신탁통치를 내켜하지 않았지만 북한은 반탁이 대세가 되지 않고 찬탁이 대세가 되었다. [[조만식]] 등의 우파, 기독교 세력 등이 반탁 운동을 벌였지만[* 조만식의 정치 성향을 보면 반공주의까지는 아니고 중도 우파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이런 그가 끝까지 신탁통치 반대를 주창한 것은 신탁통치를 [[일본 제국|일제]]하에 제기된 자치론과 비슷하게 생각한 것 때문으로 해석되며 [[동아일보]]의 오보도 조만식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렇기 때문에 조만식은 자치론에 대해 그랬듯이 신탁통치 주장을 '독립을 유보하자'는 당치않은 주장으로 받아들였고 일제강점기의 [[신간회]] 결성 당시와 마찬가지로 비타협적 무저항의 시민불복종 노선을 걸었던 듯하다.] 얼마 가지 않아 조만식이 연금당하고 우익 인사들이 대거 월남하면서 북한 내의 반탁운동은 오래가지 못한다. 남한과는 달리 신탁통치가 아닌 후견제로 선전한 소련 당국의 선전정책이 주민들에게 상당부분 먹혀들어갔던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북한의 우익들에게는 남한이라는 대안이 있었기 때문에 상당수가 북한에서 투쟁하기보다는 남한으로 월남하는 쪽을 택하면서 북한에서의 우익 세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